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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빈클라인 노출하려고 만든 속옷 이 브랜드는 왜 속옷만 유명할까

by 웨더맨 2024.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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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빈클라인   노출하려고 만든 속옷  이 브랜드는 왜 속옷만 유명할까

 

 

최근 일본을 떠들썩하게 만든 뉴진스의 데님옷 
How sweet 뮤비에 나온 민지님의 스포츠 브라 전부 
이 알파벳이 적혀있습니다. 


패션을 좋아하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이니셜만 봐도 대부분이 알아차리는 
이 브랜드는 캘빈클라인입니다. 
많은분들이 알고 있다는건 
꽤 유명한 브랜드라는 소리인데요. 
게다가 오래전부터 대형 스타들만 
이 브랜드의 광고에 등장하니 
좀 잘나가는 브랜드인가보네 라고 생각할만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여러분의 주위에서 캘빈클라인의 옷을 본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없습니다. 아니 없어졌습니다. 
당연히 안보이는 속옷을 제외하고요. 
왜 항상 엄청난 슈퍼스타들이 광고에 등장하는지 
그리고 그 스타들은 예외없이 속옷 아니면 
이 아이템을 착용하는지 
화려한 광고와는 다른 현실의 괴리감은 무엇 때문인지 
오늘 알게 되실 겁니다. 

캘빈클라인의 탄생 
너무 익숙해졌지만 이 상표가 외국의 
어느 한 인물의 풀네임이라는걸 쉽게 예상하실겁니다. 
1942년 모셜루 파크웨이 라는 
미국 뉴욕의 한 동네에서 한 남자아이가 태어납니다. 
이 동네는 위험하다고 소문난 할렘가와 매우 가까운 곳인데요. 
아일랜드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온 이민자들이 
거주하는 다문화 동네였습니다. 
모든 이민자들이 그렇듯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정착한 사람들이었으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헝가리에서 온 그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죠 
식료품점에서 직원으로 일하는 아버지를 보며 자란 
그는 돈에 대한 갈망과 사업에 대한 꿈을 가졌습니다. 
그의 꿈과 갈망을 함께 공유하는 친구가 한명 있었는데요. 
똑같은 직업의 아버지를 두고 
집도 가까운 곳에 있는 이웃 베리 슈아츠입니다. 
매우 비슷한 가정환경의 나이까지 비슷한 둘은 
평생을 함께 할 친구가 됩니다. 

훗날 브랜드 캘빈클라인이 자리를 잡는데 
엄청난 금전적 도움을 준 그는 
캘빈클라인의 공동대표가 됩니다. 
어쨌든 패션으로 돈을 벌고 싶었던 그가 
학업을 마치고 자신의 이름으로 
브랜드를 론칭하게 되기까지 정말 다사다난했습니다. 

 

그 이유는 미국의 당시 상황 때문인데요. 
1950년대 미국 의류업계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그때의 미국은 건전한 패션문화가 자리 잡기 전이었습니다. 
당연히 옷은 있었죠. 
하지만 멋과 문화를 즐기는 패션은 
유럽으로 여행을 가서 패션쇼의 옷들을 구입하는 
부유층만 누릴수 있는 취미였습니다. 

미국에서 패션디자인이라 함은 
대부분 유럽의 패션쇼를 보고 빠르게 스케치하여 
디자인을 베끼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패션디자이너라고 부르지 않고 
카피스트 혹은 스타일리스트라고 불렀습니다. 

캘빈은 이 카피의 능력이 특출났습니다. 
한번 보고 빠르게 처치해낼수 있는 이 능력 덕분에 
싸구려 드레스를 만드는 생산직에서 벗어나 
파리로 출장을가 디자인을 카피해 오는 
스케쳐로 일할수 있었습니다. 

카피스트로 일을 하며 안목을 키우고 
옷감 선택에서부터 제작까지 전부 도맡아 하면서 
실력을 쌓았는데요. 
그의 성장과는 별개로 그는 그일이 너무 싫었습니다. 
깔끔하고 미니멀한 그의 취향과는 정반대인 
화려하고 야시시한 옷을 베끼고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이 일을 벗어 개선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옵니다. 

인종 모피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홀든사의 사장의 눈에 들어온 것인데요. 
캘빈의 능력을 마음에 들어한 그는 4년 계약조건으로 
지속적으로 보수도 올려주고 
캘빈만의 디자이너 스튜디오도 마련해 줍니다. 
이 개인적인 공간덕분에 패션 에디터 바이어들과 
인맥도 형성할수 있었고, 
생각보다 업무시간후에 
온전히 자신의 것을 창작할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자신이 원하던것을 할수 있게 된 그는 
근무시간을 제외한 밤과 주말에 
자신만을 위한 작업에 몰두합니다. 
이렇게 6개월이 흘러 코트 6벌과 드레스 3벌을 완성합니다. 
그런데 이건 엄연한 불법이었습니다. 
계약기간에 홀드넷 시설을 이용하여 
개인적인 물품을 만들었으니까요? 

캘빈이 스스로 이 사실을 고하기전 
소문은 이미 홀든사장의 귀에 흘러 들어갔습니다. 
분노한채 스튜디오에 들이닥친 그는 
디자인한 옷을 모두 몰수하겠다고 으름장을 뒀습니다. 
캘빈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먹이며 말했죠. 
이건 내 전부예요. 설마 이걸 가져가진 않겠죠. 
사장님은 소송 같은걸 걸지 않을분이란걸 알아요. 
응 아니야. 

바로 마음이 약해진 사장은 그를 계약에서 풀어주었고 
1967년 12월 28일 이 9벌을 가지고 
캘빈클라인사를 설립합니다. 
라이센스 브랜드를 차렸으면 뭐를 할까요? 
당연히 팔아야겠죠. 
인터넷이 있던 시절도 아니고 
오프라인 매장을 차린것도 아닌데 
캘빈클라인은 어떻게 홍보를 하고 판매를 했을까요? 

그 시절 미국에는 이런 브랜드들에게 
정말 좋은 방법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특정한 시기에 호텔방을 빌리는 것인데요. 
세븐세버뉴 488번지에 있는 한 호텔에선 시즌만 되면 
2층에 걸쳐 객실 모두가 의류 전시회장이 됩니다. 
그 기간동안 여러 바이어들이 방문하여 
마음에 들면 거래를 하는 시스템이죠. 
1968년 3월 캘빈은 만든 아홉벌을 가지고 
호텔 엘리베이터 바로 앞 613호실을 빌립니다. 

 

그렇게 방문객들을 상대하던 어느날 
이 컬렉션 옷들을 자신의 회사로 직접들고 와줄 수 있겠냐는 
무례한 부탁을 한 바이어가 있었습니다. 
언찮은 기분이 들었지만 이름을 듣자마자 바로 수락합니다. 
뉴욕에서 잘 나가는 대형 백화점 보닛 텔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약속 당일 그는 샘플이 조금이라도 구겨지는 것을 염려하여 
이 먼거리를 옷걸이채 질질 끌고 갔습니다. 

중간에 바퀴하나 고장 났음에도 
끝까지 택시를 부르지 않았죠 
힘들게 도착한 곳에는 바이어뿐만 아니라 
백화점 사장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옷을 확인하는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에 
내심 기대를 저버렸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이 
그를 놀라게 했습니다. 

클라인씨 코트와 드레스에 대해 
당신이 요구하는 가격보다 20달러씩 더 지불하겠습니다. 
본인이 내놓은 가격으로 절대 이런 옷을 만들수는 없어요. 
샘플과 똑같이 만들어서 보닛으로 배달해주세요. 
요구한 액수보다 더 지불하니 독점공급으로 합시다. 
캘빈은 이미 계약한 바이어들이 있어 
독점계약만큼은 불가능하다고 답했고 
사장은 마지못해 계약을 받아들입니다. 

이것을 계기로 엄청난 주문이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감당이 안될정도로 주문량이 늘자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는데요. 
그것이 바로 라이센스였습니다. 
코닥 디스커버리 내셔널지오그래픽 예일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볼수 있는 이런 브랜드들도 
전부 라이센 브랜드입니다. 

라이센스란 브랜드 상표만 빌려주고 
판매와 생산을 전부 맡겨버리는 방식인데요. 
당시 자본이 없는 캘빈클라인에겐 카테고리를 넓히고 
생산수량도 높일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죠. 
캘빈클라인에서 한 라이센스 방식과 
이 라이센스 브랜드들과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만 상표를 사용하고 판매와 생산은 자유롭게 하는 
이런 브랜드들과는 달리 
캘빈은 디자인과 생산수량에 대해 결정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생산회사들과 하나씩 라이센스 계약을 맺으며 
캘빈클라인은 빠르게 패션왕국이 될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빠른 성장을 도와준 이 많은 계약들이 
훗날 독이 되어 돌아올줄은 그땐 몰랐죠 

CK Jeans 아마 8~90년생 분들이라면 
CK Jeans에 대해 알고 있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캘빈클라인은 데님 팬츠로 
성공한 브랜드 중 하나이기 때문이죠. 
이것 또한 라이센스의 결과물인데요. 

1976년 사내에서 직접 제조된 
첫 CK 청바지가 출시되었는데 완전 대실패였습니다. 
제대로된 데님을 제작할만한 
설비가 있는곳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결국 다른 라이센스 아이템들과 마찬가지로 
데님을 전문적으로 만드는곳과 계약하여 생산을 맡기고 
디자인과 광고만 캘빈이 담당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초대박 청바지를 출시할 시기에 
클라인의 딸이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해 
홍보를 위한 조작극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이 성공의 가장 큰 이유는 품질도 디자인도 아닌 광고였습니다. 
손흥민 카즈하 제니 BTS 정국 한국모델만 하더라도 
유명한 모델들이 청바지를 
섹시하게 입고 있는 모습을 볼수 있는데요. 

이런 광고 스타일은 이 아름다운 배우의 
캘빈클라인 진 광고로부터 전해져 내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역대 최고의 미인에 항상 이름이 거론되는 블루라군의 여배우 브룩쉴즈입니다. 
현대에는 더 과감한 의상과 포즈가 허다하지만 
80년대 15살의 나이로 이런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의상과 포즈가 정말 자극적이었습니다. 


특히 광고에서 그녀가 한 말에 남자들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았죠. 
이 광고가 나온지 일주일 만에 40만장 이상 
팔려나가는 기록을 세웁니다. 
하지만 방송국 여성단체 교육단체들이 맹렬하게 공격해왔죠 
그런데 어쩌겠어요. 
젊은이들은 이것에 열광했습니다 
이 영향력으로 인해 철지난 작업복이었던 청바지가 
핫한 아이템이 되고 많은 경쟁 브랜드들이 
청바지를 내기 시작합니다. 

청바지의 선두주자가 되어버린 캘빈클라인은 
데님과 뗄래야 뗄수없는 관계가 되어버렸죠 
이렇게 광고의 맛을 알아버린 캘빈은 
그 이후로도 더 자극적인 맛의 광고들을 찍어냅니다. 
그 자극적인 맛의 끝판왕이 바로 이것입니다. 

CK 언더웨어 잘생긴 외모에 잘나가는 디자이너였던 
캘빈클라인은 각 분야의 잘나가는 친구들과 
마약 술 환락을 즐기는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 스튜디오54 라는 모임에서 누드는 
흔하게 볼수있는 광경이었는데요. 
그는 알몸보다 거기에 뭔가를 입혀서 
상상력을 자극한게 훨씬 더 자극적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안그래도 남성패션의 모든것을 디자인 하고 싶었던 그는 
속옷을 제작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렇게 제작과 광고를 기획하던 중에 
먼저 선수를 친 브랜드가 있었습니다. 
속옷 브랜드 자키에서 유명 야구선수가 
브리프만 입고 있는 광고를 내서 사람들에게 
반응을 불러일으키게 된 것이죠. 

캘빈은 재빨리 이 자키의 브리프를 생산하는곳과 계약을 맺고 
더 자극적으로 광고를 기획합니다. 
몸 좋은 올림픽 장대 높이뛰기 선수를 모델로 하여 
팬티 한장만 걸치고 흰색 새 건물에 기댄 
그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그의 새하얀 팬티에 허리밴드에는 
캘빈클라인의 상표가 새겨져 있고요. 

이 당시 전쟁 때문에 
속옷에 이름을 새기는 것은 많았어도 
브랜드 이름을 새기는건 흔치 않았습니다. 
고전 띵작 백투더퓨처에서 
여자가 팬티에 새겨진 상표를 보고 
주인공을 캘빈이라고 부르는 장면이 증명을 해줍니다. 

다시 광부로 돌아와 이 섹시하지만 깔끔한 이미지는 
캘빈클라인 역사상 처음으로 
범죄를 일으키게 만드는 발단이 됩니다. 
미국 하이틴 영화에서 좋아하는 포스터로 
자신의 방을 꾸미는 10대들의 모습을 종종 볼수 있는데요. 
이런 소유욕이 버스 정류장에 걸린 
포스터 50여개를 훔치게 만든 것입니다. 

남성 면 팬티가 대성공을 거두자 
이와 비슷한 디자인의 여성용 면속옷을 출시합니다. 
How sweet의 춤을 추는 민지님과 하니님이 입은 
이것이 바로 이때 탄생한 것이죠. 
여성 속옷 역시 자극적인 광고 사진으로 대박을 쳤습니다. 


이런 성공에 항상 뒤따라 오는 것이 있죠. 
모방과 불법 복제품들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남성 드로즈만 보아도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가 되실 겁니다. 

캘빈 클라인의 몰락과 
현재 성공적인 광고 마케팅과 많은 라이센스 계약으로 
성공가도를 달린 이 브랜드는 조금씩 삐걱대기 시작합니다. 
과거보다 더 자극적이고 더센 광고만 쫓다보니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구요. 
너무 많은 라이센스 계약으로 인해 
사람들의 컨트롤을 벗어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대형 할인매장에서 저렴한 가격에 
CK 의류들이 팔리고 있었고, 
캘빈이 본적도 없는 디자인과 아이템들이 
여러 매장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브랜드 이미지에 엄청난 타격을 받게된 캘빈클라인은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인수합병과 법적공방 등 
여러 골치아픈 일들로 시간과 돈을 쏟아붓습니다. 
당연히 그로 인해 브랜드 내실은 추락합니다. 

결국 캘빈과 베리는 이 회사를 매각하는 결정을 내립니다. 
이 둘은 각자 현금과 주식으로 
2억 1500만 달러라는 엄청난 금액을 챙길수 있었죠. 
그렇다면 남겨진 캘빈클라인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오래된 대형 브랜드들과 마찬가지로 
유명한 디자이너들을 발탁하여 컬렉션 사업을 진행하고 
규모를 넓히는 등 사업적으로 브랜드를 운영해 나갑니다. 

하지만 뭔가 달랐습니다. 
옷의 품질이나 디자인을 떠나 
캘빈클라인이 디렉팅을 하던 때의 톡톡튀는 
CK만의 특별함은 조금씩 희미해져 갔습니다. 
라프 시몬스까지 영입을 해보았지만 
결국 2019년에는 전통적인 컬렉션 사업은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되었으니까요? 

60년 가까이된 오래된 브랜드이니만큼 
제가 말씀드린것 외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습니다. 
옛날부터 캘빈클라인을 좋아하신분들 
아마 향수에 대해서도 잘 아실것 같고요. 
여전히 영향력 있는 스타들을 모델로 발탁하여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기 하지만 
우리의 실생활 속 캘빈클라인과는 괴리감이 느껴집니다. 
언젠가는 이 괴리감이 사라지고 
다시한번 사람들이 CK 이니셜에 열광하는 
그날을 기원하며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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